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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신문]<2014.03.09-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어떻게 이럴수가 있습니까?"③

경찰사목위원회 | 2014-03-19 | 조회 1254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3>


최근에는 대원들의 근무와 기강이 정상화됐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시위진압 현장에 화염병과 쇠창살이 등장하면서 각종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부대 내 생활에서도 선임들의 가혹행위로 인해 후임 대원들의 자살소동이 수시로 일어나곤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강동경찰서 타격대에 근무하던 한 신병 대원이다. 이 대원은 고참들에게 구타 등 가혹행위를 받고 자살 직전까지 갔으나, 이 대원의 아빠(?)가 돼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고 심적 어려움을 함께하면서 삶의 의욕을 심어주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인 결과 이 대원은 마음을 다잡고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이것을 계기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아들로 새로 태어나기도 했다.
 
대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터득하게 된 것은 "선교는 '우선 사랑으로 상대방을 감싸 안고 마음으로 함께하면서 삶의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 병들고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꿈을 먼저 심어주시지 않았나! 바로 교리반에 들어와서 교리를 받으라고 하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비단 젊은이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한 '복음전파의 기본 정신은 삶의 현장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 안고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란 신념이 강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지금부터 약 6년 전 광우병 촛불시위로 온 나라가 홍역을 앓고 있을 당시 서울 시내 광화문 한복판에서 시위대와 전ㆍ의경들이 전쟁하는 것처럼 밀고 당기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당시 대원들은 거의 3개월 동안 부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닭장 같은 경찰 버스 안에서 새우잠을 자고 길거리에서 밥을 먹는 등 온갖 외적 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저는 그때 수시로 간식을 싸들고 제가 담당하는 강동경찰서 대원들을 찾아가 "힘들지" 하면서 안아주고 격려를 해줬으며, 이때 많은 대원은 눈물을 흘리면서 품에 안기고 어려움을 호소했었다. 당시 모든 선교사가 이처럼 길거리의 엄마와 아빠가 돼 그들을 위로했으며, 지금도 이것이 하나의 전설처럼 회자해 내려오고 있다. 그 후로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 경찰사목위원회 합동 세례식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대원이 세례를 받았으며, 그해는 연 3회 세례식을 통해 거의 1000명의 대원이 하느님 품에 안기는 보람을 안았다.
 
한편 이와 함께 삶의 희망을 심어주는 또 다른 곳이 있으니 바로 경찰서 유치장이다. 수년 전 강동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났던 한 살인범과의 대화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는 사람을 죽인 범인이다. 좋은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는 한 중년의 유치인에게 조용히 다가가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노래를 들려주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쥐여주며 "힘드시죠"라는 말을 건넸더니 사자 같던 이 남자도 눈물을 흘리면서 양처럼 변했다. 처음에는 유치인들이 사회에서 도태돼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을 했으나 이들이야말로 삶의 질곡 속에서 잠시의 실수와 잘못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한번 잘못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심어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그리스도의 복음적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됐다. 그 뒤로 매주 한 차례 '쇠창살 안의 예수님'을 찾아가 그들을 만나다 보니 현재 나의 위치를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되고 이러한 봉사의 길을 주신 주님의 깊은 섭리가 마음속에 아롱거려 온다.

(계속)